Smashing Pumpkins (스매싱 펌킨스)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는 시카고(Chicago) 출신의 4인조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 밴드이다. 이들은 같은 시기에 활동을 시작한 메이저 얼터너티브 록 밴드들 중 가장 언더그라운드 록의 영향을 적게 받은 밴드이다.
리드 기타리스트·보컬·송라이터인 빌리 코건(Billy Corgan)은 비틀즈(the Beatles),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도어즈(Doors),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 그리고 재즈 뮤지션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 헤비메틀(heavy-metal), 고쓰 록(goth-rock), 싸이키델리아(psychedelia), 드림 팝(dream-pop)의 혼합물을 잘 융화시켜 휘몰아치는 듯 뒤틀린 기타를 위주로 한 강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재즈 기타리스트의 아들로 시카고에서 성장한 코건(Corgan)은 10대 후반 플로리다(Florida)에서 고쓰 메틀 밴드인 마크드(the Marked)의 멤버로 잠시 활동했고 88년 다시 시카고로 돌아왔다.
레코드 가게에서 일을 시작한 그는 그 곳에서 기타리스트인 제임스 이하(James Iha)를 만나 드럼 머신을 가지고 작곡과 연주를 시작했다. 어느 클럽 쇼에서 만나게 된 다아시 레츠키(D'Arcy Wretzky)는 베이시스트로 참여하게 되었다.
클럽에서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곧 지역 팬들을 확보했고, 한 클럽의 주인이 제인스 어딕션(Jane's Addiction)의 오프닝 밴드로 주선을 했다. 이 공연 직전에 드러머인 지미 챔벌레인(Jimmy Chamberlain)이 가세하여 오랜 동안 밴드의 드러머로서 활동을 했다.
90년 시카고 지방 레이블인 리미티드 포텐셜(Limited Potential)에서 발표한 데뷔 싱글 'I'm One'은 곧 매진되었고 이들은 그 해 겨울 서브 팝(Sub Pop)을 통해 'Tristessa'를 발표했다. 그 무렵 밴드는 계약 경쟁의 대상이 되었고 버진(Virgin)과 계약을 체결했다.
부치 빅(Butch Vig)이 프로듀싱한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와 드림 팝(dream-pop)이 섞인 이들의 데뷔 앨범 [Gish](91)는 발매되자마자 컬리지(college)와 모던 록 차트에서 히트를 기록했다. 이 앨범은 같은 해 발매되었으며 역시 빅(Vig)이 프로듀싱한 너바나(Nirvana)의 [Nevermind]에 가려 제대로의 평가를 받지 못한 불운의 앨범으로도 유명하다.
많은 인디 록 팬들은 이들의 메이저 데뷔를 비난했으나 이러한 비난은 밴드의 성공에 그다지 해를 끼치지 않았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와 펄 잼(Pearl Jam)의 오프닝을 비롯하여 1년 여 동안이나 공연에 돌입했으나, 이 공연 도중 연인이었던 이하(Iha)와 다아시(D'Arcy)의 결별과 챔벌레인(Chamberlain)의 약물·알코올 중독은 코건(Corgan)을 심한 절망감에 빠뜨렸다. 이로 인한 불화는 빅(Vig)과 함께 2번째 앨범 작업을 시작할 때까지도 해결되지 않았다.
세션이 시작될 무렵 이들은 영화 [the Singles]에 'Drown'을 삽입시키기도 했다. 앨범 작업 동안 코건은 작곡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기타와 베이스를 혼자 연주하면서 침체에서 헤어나려고 노력했다.
93년 발표한 2집 [Siamese Dream](93)은 앨범 차트 10위로 데뷔하면서 밴드를 스타의 대열에 올려놓았다. 멜로트론과 첼로, 바이올린 등 현악을 등장시켜 사운드에 깊이를 준 이 앨범은 싱글인 'Cherub Rock'을 비롯해 'Today', 'Disarm'을 성공시키며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이러한 성공으로 이들은 94년 롤라팔루자(Lollapalooza) 공연에 헤드라이너로 참여하게 되었다.
공연을 마치며 이들은 다음 앨범이 더블 디스크가 될 것임을 밝혔고 다음 앨범까지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B-side 모음집인 [Pisces Iscariot](94)을 발표했다. 플러드(Flood), 앨런 모울더(Alan Moulder)와의 작업으로 이들은 예정대로 3집인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95)를 더블 앨범으로 발매했다.
주위의 회의적인 예측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차트 정상으로 데뷔하면서 전작보다 더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싱글인 'Bullet with Butterfly Wings', '1979', 'Zero', 'Tonight Tonight'의 성공에 힘입어 이 앨범은 미국에서만 4백만 장 이상이 판매되었으며 8번 이상의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이들은 스타디움 공연을 기획했고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밴드 투어에 참가 중이던 키보디스트 조나단 멜보인(Jonathan Melvoin)이 헤로인 과용으로 사망하자 함께 있었던 챔벌레인(Chamberlain)은 해고되었다. 2달간의 휴지기를 마친 후 이들은 객원 드러머와 키보디스트로 나머지 공연을 마쳤다.
97년 초 이하(Iha)와 다아시(D'Arcy)는 머큐리(Mercury)의 자회사인 스크래치(Scratchie) 레이블을 설립했고 그 해 봄 밴드는 영화 [Batman & Robin]을 위해 2곡을 녹음했다.
이하(Iha)는 솔로 앨범인 [Let It Come Down](98)을 발표했다. 역시 같은 해 밴드의 4집인 [Adore](98)가 발매되었다. 싱글 'Ava Adore'를 수록한 이 앨범은 전작에 비해 차분해지고 어쿠스틱한 면이 많았으며, 상업적인 성공은 전작에 미치지 못했다.
5집 작업 직전에 해고되었던 드러머 챔벌레인(Chamberlain)이 다시 합류했고, 녹음을 마친 현재 베이시스트인 다아시(D'Arcy)가 밴드를 탈퇴한 상태이다. 플러드(Flood)가 다시 프로듀싱을 맡은 5번째 앨범은 2000년 발매를 예정으로 하고 있다.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는 당시 활동하던 밴드들과는 달리 많은 내부 갈등을 견뎌내었으며, 90년대 초반 밴드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가장 성공적인 밴드임을 증명하면서 꾸준한 앨범 판매를 보였다.
파괴적이었던 너바나(Nirvana)와 성공을 멀리한 펄 잼(Pearl Jam) 덕에 이들은 얼터너티브 록 밴드의 성공의 표본이 되었다. 앨범마다 끊임없는 음악적 변신을 추구한 이들이야말로 90년대 최후의 진정한 얼터너티브 록 밴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