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71
미국 볼티모어 출신의 4인조 록 밴드 SR-71은 1990년 고향의 조그마한 클럽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던 미치 앨런(Mitch Allan)과 로컬 밴드 로프턴(Lofton)에서 베이스를 담당했던 제프 레이드(Jeff Reid)가 서로의 음악지향이 같음을 알고 의기투합하면서 결성됐다.
여기에 드러머 댄 가빈(Dan Garvin)과 PWI(People With Instruments)란 밴드에서 기타를 치던 마크 조셉 뷰케민(Mark Joseph Beauchemin)이 합류하면서 완벽한 진용을 갖췄다. 이때 당시의 그룹명은 아너 어몽 씨브즈(Honor Among Theives). 그들은 애드가 알란 포우(Edgar Allen Poe)가 자주 들었다는 볼티모어의 유명한 클럽 <The Horse You Came In On>에서 연주를 하며 인지도를 쌓아 나갔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1995년 그룹명을 SR-71로 개명한 직후 '스스로 제작'(Self- Produced)하고, '스스로 배급'(Self-distributed)까지 맡은 인디 앨범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펑크의 DIY정신이다. 물론 인디의 망이 넓게 퍼져있는 미국과 영국의 입장에서는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직도 완전히 정착되지 못하고 현재진행형인 우리 나라에서는 배울 점이 많다. SR-71을 비롯한 수많은 인디 밴드들은 다양하고 폭넓은 음악 실험을 통해 고착한 된 주류의 음악 장르를 끊임없이 견제하고 있다. 상업성에 매몰되지 않은 순수하고 깨끗한 음악으로 주류 음악계와 진검승부를 벌이는 것이다.
SR-71의 인디 앨범은 고향 볼티모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에 용기를 얻어 그들은 1998년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음악 도시 뉴욕으로 진출했고, 메이저 레이블 RCA와 음반 계약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우리는 계약을 맺기 전 엄청나게 성장해 있었다"며 앨범 작업에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SR-71은 2000년에 내놓은 데뷔작 <Now You See Inside>를 발표하면서 자신들에게 영향을 준 음악선배들에 대한 예우를 깍듯이 하고 있다. "사람들은 우리 음악을 브리티시 사운드라고 한다. 그것은 아마 우리가 비틀즈, 퀸, 폴리스를 존경하기 때문이다." 미국인이면서 영국 그룹을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한다.
그 중에서도 비틀즈를 향한 경배는 대단하다. 앨범 녹음작업을 뉴욕의 비어스빌(Bearsville)과 런던의 처치(Church) 스튜디오에서 각각 나누어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나의 영웅 비틀즈와 정신적인 유대관계를 가진 것은 매우 환상적이었다" 런던에서 작업을 하고 돌아온 미치의 기쁨에 찬 소감이다. 그는 특히 폴 매카트니를 음악의 지표로 삼을 정도로 좋아한다. 데뷔 앨범의 맨 마지막 곡이 'Paul McCartney'인 것도 그 이유에서다.
SR-71은 자신들의 음악 물줄기를 탐색하는 작업을 조국에서도 계속했다. 비틀즈와 함께 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그룹은 바로 서프 뮤직의 대명사 비치 보이스였다. "우리는 그들의 하모니와 멜로디를 무척 사랑했다. 앨범 믹싱 작업을 할 때 <Pet Sounds>에서 사용했던 믹싱 머신을 이용, 백업 보컬과 드럼에 비치 보이스 사운드를 집어넣었다." 제프 레이드의 말이다.
음악 거장들에 대한 감사함과 고마움을 담은 밴드의 데뷔 음반은 영국적 사운드가 강하게 느껴진다. 미국 특유의 리듬감 대신 영국의 전통적인 멜로디 감각이 주를 이룬다. 이런 결과는 그들의 작곡 방법에 있었다. 미치가 주요 테마를 만들면 마크가 나머지 여백을 채우고 제프와 댄이 마무리를 하는 식이다. 작곡 주도권을 쥐고 있는 미치가 폴 메카트니 추종자임을 상기한다면 쉽게 이해가 간다.
빌보드 모던 록 차트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첫 싱글 'Right now'와 강력한 로큰롤 넘버 'Politically correct'에서 여실히 증명된다. 하지만 SR-71만의 독창성이 부족하다. 그들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마하 3.2의 초스피드를 자랑하는 스텔스 첩보기에서 그룹명을 따온 SR-71. 레드 제플린, 유투에 이은 또 하나의 '슈퍼 항공 밴드'로 꾸준한 비행을 하게 될지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