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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17 23:52
Steve Miller (스티브 밀러)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86  



Steve Miller (스티브 밀러)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대단한 인기를 누린 스티브 밀러(Steve Miller)는 2001년 국내 듀엣 언밸런스의 노래 '오버 맨'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 다시 회자되었다. 이 곡은 샘플링을 떠나 번안곡이라고 해도 충분할 정도로 스티브 밀러의 1982년도 넘버 원 싱글 'Abracadabra'의 멜로디를 충실히 따랐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버 맨'으로 자신의 능력을 오버한(?) 언밸런스의 멤버 박명수 덕분에 젊은 음악 팬들은 스티브 밀러란 뮤지션을 궁금해했고 그의 노래 'Abracadabra'도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


사실 스티브 밀러는 우리나라에선 단지 팝록 싱어 송라이터로만 알려졌지만 그의 음악적 진원지는 블루스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이키델릭과 성인 취향의 팝록, 재즈 등으로 자신의 음악적인 역량을 확대했지만 대중들은 1970년대와 1980년대의 팝계를 평정했던 히트곡 위주로 그를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스티브 밀러의 대중 지향적인 음악 접근법이 많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1943년 10월 5일 위스콘신 주의 음악 가정에서 태어난 스티브 밀러는 3살 때 삼촌으로부터 기타를 선물로 받고 본의 아니게(?) 음악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5살 때 아버지를 따라 간 클럽에서 전기 기타의 전설이자 '레스 폴'이라는 기타 모델로 더 유명해진 레스 폴(Les Paul)을 만나 그의 문하생이 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이루게 되었다. 9살이 된 밀러는 자신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초대된 블루스의 명인 티 본 워커(T-Bone Walker)의 연주를 듣고는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든 블루스의 늪에 빠진다. 이때부터 스티브 밀러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블루스 맨으로 환생한다.


10대 시절부터 마크스멘(Marksmen)이란 밴드를 결성해 블루스와 초기 로큰롤을 연주했던 그는 고등학교에서 보즈 스캑스(Boz Scaggs)를 만나 음악 동지이자 평생의 파트너로서의 인연을 맺었다. 보즈 스캑스는 빌리 조엘(Billy Joel)과 함께 1970년대의 도시적 감성을 표현한 '시티 뮤직'의 대표 주자로서 아직까지도 사랑 받고 있는 발라드 'We're all alone'과 디스코 트랙 'Lowdown'의 주인공이다.


덴마크의 코펜하겐 대학에서 유학하던 젊은 블루스 맨은 음악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미국으로 귀환했다. 그가 정착한 곳은 시카고였고, 바로 그곳에서 '블루스 영 맨' 스티브 밀러는 머디 워터스(Muddy Waters), 하울링 울프(Howlin' Wolf), 버디 가이(Buddy Guy) 같은 시카고 블루스의 대가들과 함께 공연하는 영광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블루스 현상이 시카고에서 급격히 사그러들자 신개념의 음악을 수혈 받기 위해 새로운 음악 물결이 넘실대던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그에게 샌프란시스코는 신천지였다. 확실히 그곳의 맑은 태양과 시원한 바닷가, 그리고 약물 문화는 스티브 밀러를 포함한 많은 뮤지션들에게 신선한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의 음악도 사이키델릭의 몽롱함과 웨스트코스트의 밝고 낭만적인 햇살을 받아들인 대중적인 블루스 록으로 선회했다. 1968년에 공개된 데뷔 앨범 <Children Of The Future>부터 1969년의 5집 <Brand New World>이 당시의 음악 경향을 대변한다. 그때까지 그의 싱글 히트곡은 'Livin' in the U.S.A.'가 94위를 기록한 것이 유일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이 곡은 1974년에 다시 싱글로 발매되어 49위까지 올라 밀러의 반등된 인기를 실감케 했다.

1973년에 발표된 <The Joker>부터 그의 음악은 차트에 포커스를 맞춘 싱글 위주의 트랙들이 음반을 채우기 시작했기에 많은 평론가들은 이 음반에 댄한 평가를 하향 조정했다. 반면에 앨범 타이틀 트랙은 최초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1950년대 보컬 그룹 클로버스(Clovers)의 노래를 커버한 'Your cash ain't nothin' but trash'도 51위를 마크하면서 앞으로 시작될 스티브 밀러 전성 시대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3년 후에 발표한 <Fly Like An Eagle>은 1970년대를 '밀러 타임'으로 만든 결정타였다. 1996년 영화 <스페이스 잼>의 사운드트랙을 위해 실(Seal)이 리메리크 해 다시 한번 탑 텐에 올랐던 타이틀 트랙 'Fly like an eagle(2위)'을 비롯해 우디 알렌(Woody Allen)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Take the money and run(11위)', 두 번째 넘버원 싱글 'Rock'n me'가 이 음반에서 태어났다. 'Fly like an eagle'은 1969년도 음반 <Brand New World>에 수록된 'My dark hour'의 도입부 멜로디를 차용한 노래다. 그러나 국내의 팝 매니아들은 미국 차트와는 상관없이 살아있는 물고기처럼 리듬감이 생생한 'Serenade'에 열광했다.


이듬해에 나온 <Book Of Dreams>도 '밀러 타임'을 연장시켰다. 'Jet airliner(8위)'와 'Jungle love(23위)', 'Swingtown(17위)'처럼 신나는 곡들이 미국에서 그의 인기를 높여주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매년 겨울이면 들을 수 있는 'Winter time'과 1982년에 인기 차트 정상에 복귀한 'Abracadabra'로 각인되었다. 'Abracadabra'는 앞에서도 언급한대로 국내 듀엣 언벨런스의 번안곡과 1999년 슈가 레이(Sugar Ray)의 커버로 재조명 받았다. 1993년도 작품 <Wild River>의 타이틀 트랙이 64위라는 저조한 성적을 낳자 스티브 밀러는 연어의 회귀본능처럼 자신의 뿌리인 블루스와 새로운 영역인 재즈로 방향을 틀고는 꾸준한 공연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스티브 밀러가 팝 역사에서 차지하는 발자취는 그의 음악 역사에 비해 그다지 선명하지 않다. 하지만 그가 작성한 '밀러 타임'은 50년의 로큰롤 역사에서 일정한 지분을 차지할 충분한 권리가 있다. 비록 1970, 80년대 음악이 그의 첫사랑인 블루스가 아닌 해바라기성 팝록이라 해도 그것은 허물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40여 년 동안 대중음악에 수절한 거인 스티브 밀러를 대하는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