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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17 23:58
Stevie Nicks (스티비 닉스)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552  



Stevie Nicks (스티비 닉스)
 

 
통찰력 있는 듯한 독특한 목소리와 소용돌이치는 듯한 무대 매너를 지닌 스티브 닉스는 70년대 중반부터 말기에 걸쳐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의 대성공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녀의 통찰력 있는 작곡실력 또한 밴드가 70년대에 공연이나 앨범 판매고 면에서 크게 인기를 끄는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 플리트우드 맥은 비록 다섯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하나의 완벽한 음악적 구조로 잘 조화되어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스티비가 이때 솔로활동을 한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80년대에 그녀는 스스로 밴드에서 나와서 혼자 힘으로 스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피닉스에서 태어났으나 성장기의 대부분을 다른 지역에서 보냈다. 그녀의 아버지는 가족들이 경영하던 회사에서 이사직을 맡고 있어서 여러 지역을 돌아다녀야 했다. 여러 계열 회사 가운데 그녀의 아버지는 그레이 하운드와 아무르 미트 회사에서 일하였다. 이 무렵 그는 10대였으며 가족들은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 당시는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의 첫 번째 주자로 비틀즈가 새로운 록의 시대를 연 시기였고, 미국 내에서는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사이키델릭 록음악 등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스티비는 10대 초반에 록의 전반적인 지식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16세에 곡을 쓰기 시작했고, 10대 후반에 '프리츠(Friz)'라는 밴드에서 리드보컬을 맡았다. 이 밴드에는 뛰어난 재능을 지닌 린시 버킹험(Lindsey Buckingham)이라는 젊은 베이스 연주자가 있었다. 지역 내에서는 최고의 밴드였으나 더 이상의 발전이 없었기에 그들은 자연적으로 해산되었고, 린시와 스티비는 서로 친근한 사이가 되어 로스엔젤레스로 이주하여 음악적 경험을 쌓기로 한다.


몇 년 동안 그들은 세션 일이나 음악과 상관없는 일 등등을 닥치는 대로 해서 결국 그들만의 앨범인 [Buckingham Nicks](Polydor, 73)을 녹음하게 되었다. 이 앨범은 간간이 보컬과 기타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고, 결국 이 앨범으로 그들 둘은 플리트우드 맥에서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 앨범은 비평가나 레코드 구매자들에게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렇지만 우연한 기회로 그들의 인생을 바꾸는 촉매제가 되었다. 74년 11월 드러머이자 플리트우드 맥의 창립 멤버이기도 한 믹 플리트우드(Mick Fleetwood)가 로스엔젤레스의 한 슈퍼마켓에서 친구와 쇼핑을 하던 중 몇 년 전부터 밴드의 내부에서 분열의 조짐이 있다는 말을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결말이 나지 않은 상태로 더 나은 레코딩 스튜디오를 찾기 시작했고 밴 너이스(Van Nuys) 근처에 있는 사운드 시티 스튜디오(Sound City Studios)를 소개받게 되었다. 플리트우드가 스튜디오에 갔을 때 그 스튜디오의 엔지니어는 출력설비를 시험하기 위해 [Buckingham Nick] 앨범을 틀어놓고 있었다. 옆방에 있던 스티비는 자신의 노래 소리를 듣고 궁금해서 그 방에 들어와 보았고 여기서 플리트우드를 만나게 되었다. 이 만남은 그들 서로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고 몇 주 후 믹이 스티비와 린시에게 연락해서 자신의 밴드에 오디션을 볼 것을 제의했다.


그 결과 다섯 명으로 구성된 밴드가 결성되었고 이들은 70년대에 가장 유명한 록밴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Fleetwood Mac](Warner Brothers, 75)을 시작으로 그들은 [Rumours](77), [Tusk](79), [Live](80)를 발표하며 수백만 장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하였다. Top 10에 올랐던 싱글들은 가끔 스티비가 작곡을 하기도 했는데 그녀의 곡 가운데 가장 큰 히트곡은 'Dreams'였다.(이 곡은 77년 6월 18일자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고, 전세계적으로 넘버원 싱글이 되었다.) 그러나 77년 모든 멤버들은 개인적으로 밴드에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스티비의 경우, 린시 버킹험과의 8년동안의 애정관계가 결말을 맞게 되었다. 그 고통의 흔적이 그들의 대히트 앨범인 [Rumours]의 여러 트랙에서 나타났다.


비록 그들이 그럭저럭 몇 년간 계속 레코딩 작업을 하고 공연을 해왔지만, 스티비는 여전히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피플지와의 인터뷰에서(79년 11월 26일) 밴드를 떠나게 될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녀는 선셋 대로에 있던 멋진 맨션에서 해변가에 위치한 현대적인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그녀는 이때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나는 현재 31살이다. 한 록밴드에 계속 머무르고 싶지는 않다. 어떤 사람들은 록스타가 되어서 큰 부자가 된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이 싫다. 나는 항상 기다리는 것이 싫었고 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항상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하곤 한다."

그녀는 그 무렵 밴드를 떠났고, 이전 남자친구였던 폴 피시킨(Paul Fishkin)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는 모던 레코드(Modern Records)라는 레이블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악기 연주는 물론 [Rhiannon]이라는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맡기도 했다. 이 영화 이야기는 그녀가 작곡한 곡을 기초로 했는데, 76년 플리트우드 맥 시절 Top 10에 올랐던 곡인 'Rhiannon'이 바로 그것이다. 그녀는 또한 다른 형태의 글쓰는 일을 시도했는데 79년에서 80년 사이에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를 한편 써서 이를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하려고도 했다. 그녀는 피플지의 짐 제롬(Jim Jerom)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황금 물고기와 무당벌레의 사랑이야기이다. 한 친구가 나에게 이 영화는 어린이 영화 가운데 [닥터 지바고]로 불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에겐 곧 모던 레코드사와의 일이 주요활동이 되었다. 80년도 말, 스티비는 솔로앨범 준비를 시작했다. 플리트우드 맥과의 활동을 마친 이후 시기적으로 이때는 솔로앨범을 발매하기에 적당한 시기였다. 81년 여름 발매되어 플래티넘이 된 앨범 [Bella Donna]는 플리트우드 맥의 다른 앨범들과 함께 2년 넘게 계속 빌보드 앨범차트에 머물러 있었다. 이 앨범에서의 Top 10 싱글로는 이글스의 돈 헨리(Don Henley)와 함께 부른 듀엣곡인 'Leather And Lace'와 톰 페티(Tom Petty)와 그의 동료인 마이크 캠펠(Mike Campell)에 의해 작곡된 'Stop Draggin' Mu Heart Around'가 있었다.


스티비의 두 번째 솔로앨범인 [The Wild Heart]도 모던 레코드에서 83년 중반 발매되었다.(애틀랜틱 의해 배포). 플래티넘을 기록한 이 앨범에서 싱글 히트곡으로는 83년 'Stand Back'과 83년 말, 84년 초에 걸쳐 차트 상위에 올랐던 'Nightbird'(스티비와 샌디 스튜어트(Sandy Stewart)의 공동 작곡)가 있다. 86년 발매되어 역시 플래티넘을 기록한 앨범인 [Rock A Little](86)에서 히트한 싱글 'Talk To Me'도 큰 인기를 얻었다. [Rock A Little] 발매와 플리트우드 맥의 재결합 앨범 작업 사이에 그녀는 캘리포니아 팜 스피링의 베티 포드 센터(Betty Ford Center)에서 약물 치료를 받기 위해 한달 간 지내야만 했다. 그녀는 자신의 이런 문제를 몇 년간 쉬지 않고 계속된 레코딩 작업과 공연에 의해 생긴 스트레스 탓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즈의 로버트 힐번(Robert Hilburn, 87년 6월 14일)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생각하기를 만약 내가 완전한 마니아처럼 계속 일을 하기를 원했다면 결국은 나의 음악에 큰 피해를 주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동안 그것 때문에 고통받았지만 나는 공연과 레코딩 작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를 원했다. 나는 공연 도중에 베티 포드(Betty Ford)로 갈 만큼 내가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자신이 아주 심각한 상태에 있을 때 75,000명이 지켜보는 긴장되는 무대로 바로 돌아갈 만큼 어리석지는 않기 때문이다."

플리트우드 맥의 새 앨범 [Tango In The Night]가 87년 봄 발매 되었을 때 스티비는 자신의 치료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곡인 'Welcome To The Room... Sara'가 수록되어 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