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wbs (스트롭스) 스트롭스의 역사는 67년 레체스터(Leichester)대학의 동기생 데이브 커즌스와 토니 후퍼(Tony Hooper)에 의해 탄생되었다. 이들은 듀오형태로 스트로베리 힐 보이스(Strawberry Hill Boys)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데, 처음 이들이 추구했던 음악은 전형적인 블루그래스였다. 영국 최초로 블루그래스를 구사하는 밴드로 인정 받은 이들은 곧 베이스주자인 론 채스터맨(Ron Chesterman)을 맞아들여 3인조 편성이 된다. 이 밴드는 68년 그룹의 이름을 Strawbs로 개명한 후, 당시 이미 각광받던 여성보컬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였던 샌디 대니(Sandy Denny)를 맞아들여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벌여 나갔으며 이 시기에 앨범 [All Our Work]를 레코딩한다. 스트롭스 최초의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이 앨범은 덴마크의 소넷(Sonet)스튜디오에서 녹음작업에 들어간다. 이곳은 토니 후퍼의 친구가 경영하는 스튜디오였으나, 상당히 열악한 녹음환경을 갖고 있어 단지 3트랙만으로 레코딩되었고 결국 이 앨범은 발매가 무산되고 만다.(73년 A&M 레코드사를 통해 발매되기도 했는데, 이때는 현악파트를 오버더빙시켜 사운드를 다소나마 풍부하게 만들었다.) 샌디 대니는 이후 페어포트 컨벤션(Fairport Convention)으로 이적한다. 여성 보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던 스트롭스는 다시 쏘냐 크리스티나(Sonja Kristina)를 영입하지만, 단 한 장의 싱글 녹음을 마친 후, 쏘냐는 커브드 에어(Curved Air)로 거취를 옮긴다. 이 시기부터 스트롭스는 데이브를 리드 보컬리스트로 내세우며 음악 활동을 수행하였고 밴드는 트리오 체제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69년 스트롭스의 역사적인 데뷔작 [Strawbs]를 발매한다. 이 앨범은 A&M 레코드사를 통해서 발매되었는데, (이것은 A&M 레코드사 최초로 영국 출신의 밴드와 맺은 음반취입계약이기도 했다.)사운드는 전형적인 포크록이었다. 데뷔작은 스트롭스의 공식적인 첫 앨범으로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올린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진 못했으나, 소수의 팬들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레코드사 측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데뷔작 이후, 데이브는 스트롭스의 음악적 영역을 확대하려 했으며, 곧 클래식 사운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프로듀서 토니 비스콘티(Tony Visconti)와 만나게 된다. 토니 비스콘티로 인해 밴드의 음악적 색채감은 크게 달라졌고 보다 클래시컬해져 갔다. 70년 초. 토니의 지휘아래 스트롭스의 두 번재 앨범 [Dragonfly]가 제작된다. 이 앨범에는 첼리스트인 클레어 데니즈(Clair Deniz)와 당시 재능있는 건반주자로 주목받던 릭 웨이크먼(Rick Wakeman)이 게스트로 참여하였으며 그로 인해 스트롭스의 사운드는 클래시컬해졌고 사운드 면에서 풍부함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스트롭스의 두 번째 앨범은 그다지 만족할만한 앨범은 아니었다. 포크록과 프로그레시브록의 중간자적인 위치에 놓였던 이 앨범은 포크록 밴드에서 프로그레시브록 밴드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작품 이상의 평가를 얻어내진 못했다. 이 시기 스트롭스는 대대적인 멤버변동을 갖게 된다. 론 체스터맨이 밴드를 탈퇴했고 게스트 멤버였던 릭 웨이크먼을 정식멤버로 맞아들였으며, 리차드 허드슨(Richard Hudson)과 존 포드(John Ford)가 새로이 가세하게 된 것이다. 70년 11월, 스트롭스는 세 번째 앨범이자 라이브 실황인 [Just A Collection Of Antique And Curios]가 발매된다. 이 앨범은 퀸 엘리자베스 홀(Queen Elizabeth Hall)에서 가졌던 실황을 옮긴 것으로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으며, 특히 릭 웨이크먼의 재능이 크게 발휘된 앨범이기도 했다. 또한, 스트롭스는 이 앨범을 통해서 어쿠스틱 사운드에 기반을 둔 포크밴드에서 일렉트릭 기타와 키보드, 멜로트론 등을 적극 활용할 줄 아는 프로그레시브록 밴드로 변신을 하게 된다. 71년, 스트롭스는 네 번째 앨범이 될 [From The Witchwood]의 녹음작업을 하고 있었으나 릭 웨이크먼은 자신의 음악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스트롭스를 떠나 예스(Yes)에서 활동하게 된다. 레코딩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급작스럽게 벌어진 릭의 탈퇴로 인해 이때의 스트롭스는 잠시동안 건반주자없이 밴드를 운영하기도 했다. 동년 7월에 발매된 네 번째 앨범은 차기작이 되는 [Grave New World]와 함께 프로테스탄트적인 메시지를 짙게 담아내고 있는 앨범이었다. 상반된 종교적인 환경에서 함께 자라난 두 형제의 이야기를 그린 'The Hangman And The Papist' 등이 수록된 이 앨범은 릭의 탈퇴에도 불구하고 스트롭스에겐 성공적인 작품이었고 데이브에겐 커다란 만족감을 주게 된다. 새로운 건반주자를 물색하던 데이브는 릭의 후임으로 Amen Corner 출신의 블루 위버(Blue Weaver)를 맞아들인다. 블루는 릭과는 달리 보다 어그레시브한 면이 강하고 록적인 연주를 구사해주었는데, 이후 스트롭스는 다섯 번째 앨범이 될 [Grave New World]에서 기존의 포크록에서는 어쿠스틱 건반 악기로만 인식되어졌던 덜시머(Dulcimer)나 하모늄(Harmonium) 같은 악기에 일렉트릭 기법을 도입해 그룹의 음악적 분위기를 포트록적인 프로그레시브 사운드로 만들어 그 표현영역을 확대해 나간다. 72년 2월에 공개되었던 [Grave New World]는 미국과 영국 모두에서 성공적인 작품이었으며 또한 앨범에 수록되었던 'New World'는 스트롭스 최초의 뮤직비디오로 제작되기도 했다. 한편, 데이브는 스트롭스 내에서의 음악과는 별개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지켜가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솔로활동을 병행하게 되는데, 72년 10월에는 그의 솔로 데뷔작 [Two Weeks Last Summer]로 자신의 영역을 공고히 구축한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싱글 'Lay Down'이 공전의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72년을 최고의 해로 보내려 했던 스트롭스는 창단 멤버였던 토니 후퍼가 프로듀서 활동을 위해 밴드를 탈퇴해버림으로써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결국 토니의 후임으로 데이브의 솔로앨범에 참여한 바 있고 하드록 밴드 Fire출신이기도 한 데이브 램버트(Dave Lambert)가 밴드에 합류하게 된다. 이 때부터 스트롭스의 음악적 색채는 더욱 록적인 경향을 띠게 되었다. 73년 2월에 공개된 여섯 번째 앨범 [Bursting At The Seams]는 사회비판적인 내용보다는 보다 내부적인 성찰을 대주제로 다룬 작품이었다. 멜로디는 보다 대중적으로 흘렀으며 'Part Of Union'은 영국차트 3위까지 오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73년 6월에는 리차드 허드슨과 존 포드가 밴드를 떠났고, 블루 위버마저 비지스(Bee Gees)에 합류하는 등 스트롭스는 커다란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멤버로 베이스 주자 채스 크론크(Chas Cronk)와 Stealer's Wheel 출신의 드러머 로드 쿰비스(Rod Coombes) 그리고 르네상스(Renaissance)에서 활약했던 건반주자 존 호켄(John Hawken)을 맞이하게 된다. 스트롭스는 새로운 라인업으로 74년 4월에 통산 7집 앨범 [Hero& Heroine]을 공개한다. 미국과 영국에서 동시 발매된 이 앨범은 특히 미국과 캐나다에서 크게 호평받았다. 수록곡 중 'Autunm'의 3부로 수록된 'The Winter Long'은 미국 남부에서 싱글로 발매되었으며 동년 8월에는 스트롭스의 첫 번째 베스트앨범 [Strawbs By Choice]가 공개되기도 했다. 스트롭스는 앨범 [Hero & Heroin]의 성공에 고무되었고 74년 중반, 차기작 제작을 위해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간다. 그러나, 8집 앨범이 될 [Ghosts]의 레코딩작업 도중 데이브는 뇌종양 판정을 받게 되고 밴드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 데이브는 척추에 구멍을 내어 치료하는 등의 힘든 투병생활과 레코딩을 병행해갔고, 이처럼 어렵게 작업을 마치 [Ghosts]는 74년 10월에 공개된다. 악조건 속에서 완성된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Ghosts]는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는 역작이었다. 그러나 [Ghosts]를 끝으로 스트롭스 사운드의 핵심인물로 자리를 잡아가던 존 호켄이 탈퇴함으로써 스트롭스의 건반자리는 공석이 되고야 만다. 데이브는 궁여지책으로 존 멜링(John Mealing)과 릭 웨이크먼을 게스트로 초청해 보다 파퓰러해진 앨범 [No Madness]를 공개한다. 75년 8월에 공개된 이 앨범을 결국 "A&M"레코드사에서의 마지막 작품이 된다. "A&M"레코드와 결별한 스트롭스는 폴리돌(Polydor) 산하 레이블로 딥 퍼플(Deep Purple) 출신의 로저 글로버(Roger Glover)가 운영하던 오이스터(Oyster) 레이블로 이적하게 된다. 스트롭스가 오이스터 레이블에서 발표한 첫 작품은 [Deep Cut]였다. 76년 11월에 발매된 [Deep Cut]에서는 로버트 커비(Robert Kirby), 존 멜링, 루퍼트 홈스(Rupert Holmes)가 게스트로 참여해 건반을 담당했다. 77년 6월에는 [Buring For You]를 발매하였는데, 이 앨범에는 전작에서 게스트로 초청되었던 존 멜링과 로버트 커비가 정식멤버 자격으로 다시 참여하기도 했다. 이 앨범을 끝으로 스트롭스는 다시 소속레이블을 아리스타(Arista)로 옮기게 된다. 이 레이블을 통해서 78년 2월에 발매한 [Deadlines]에는 탈퇴한 로드 쿰비스를 대신하여 토니 페르난데즈(Tony Fernandez)가 드럼을 담당했다. [Deadlines]는 힙노시스가 커버를 디자인해 화제가 되기도 했으나 레이블과의 불협화음, 인기하락 등으로 스트롭스는 밴드 결성이래로 가장 어두운 시기에 봉착하게 된다. 데이브는 새로운 건반주자 앤디 리차드스(Andy Richards)를 맞아들이며 의욕적으로 새로운 앨범 [Heartbreak Hill]을 완성했으나 결국 이것을 출반해줄 레이블을 찾지 못해 앨범발매가 실현되지 못했다. 이후 데이브는 영국의 로컬 라디오 방송국에서 프로그램 컨트롤러로서 일하게 된다. 하지만 그 일은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고, 데이브는 다시 음악계로 복귀하게 되는데, 이 때는 듀오 형태의 단순한 포크록을 지향하였다. 데이브는 브라이언 윌로비(Brian Willghouby)와 함께 음악 활동을 전개했으며 79년 6월엔 미공개작 등을 모아서 [Old School Songs]라는 타이틀의 두 번째 솔로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도 밴드에 남겨져있던 잔여 멤버들에 의해 스트롭스 형태의 음악은 간헐적으로 수행되어졌다. 그들은 데이브를 제외하고 다시 그룹에 복귀한 존 포드와 리차드 허드슨 등과 함께 더 몽크(The Monk)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기도 했고, 한 장의 싱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83년에는 데이브는 결국 이 밴드에 복귀하게 되고 스트롭스는 다시 부활한다. 이들은 '캠브릿지(Cambridge) 포크 페스티벌'을 통해 팬들에게 스트롭스 재결성 사실을 공식 확인시켜주었다. 스트롭스는 버진(Virgin)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앨범 제작에 들어간다. 87년 대망의 재결성 앨범 [Don't Say Goodbye]가 공개되었고 90년에는 캐나다 중앙방송의 사운드트랙으로 쓰일 목적으로 라이브 실황을 녹음하게 되는데, 이 실황은 95년 [Great Hit Live]라는 타이틀로 Road Goes On Forever와 Witchwood Collection레이블을 통해 발매되기도 했다. 이후 데이브는 브라이언 윌로비와 함께 소규모 솔로활동에 들어간다. 또한 91년에 다시 스트롭스에 복귀한 데이브는 간헐적인 콘서트와 밴드의 매니지먼트에 중점을 두고 활동을 해 나간다. 그는 스트롭스의 미공개작이나 CD화 되지 못했던 작품들을 발굴해 내는 작업에 전력을 쏟기 시작한다. 데이브는 91년에 A&M 레코드사와의 합의 하에 스트롭스 결성 이전부터 그룹 초기의 미발표곡들을 두 장의 CD에 담은 앨범 [Uncanned Preserves]를 공개했으며, 95년에는 아리스타 레이블 소속 시절 최종적으로 녹음만 되었던 [Heartbreak Hill]을 스트롭스의 이름으로 발매가 가능토록 만들었다. 한편 브라이언 윌로비와 듀오로서 솔로활동도 지속하고 있는 데이브는 94년 [The Bridge]라는 타이틀로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