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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18 21:41
Talking Heads (토킹 헤즈)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91  



Talking Heads (토킹 헤즈)
 


 
펑크와 훵크, 팝과 월드 뮤직을 함께 들려줬던 락 밴드 토킹 헤즈는 74년, 뉴욕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학교(Rhode Island School of Design)를 다니던 데이빗 번(David Byrne, 보컬/기타), 티나 웨이마우스(Tina Weymouth, 베이스), 크리스 프란츠(Chris Frantz, 드럼)가 만나 결성되었다.(밴드 이름 'Talking Heads'는 티비 가이드(TV Guide)라는 잡지에 나온 '사람 머리' 이미지를 보고 지은 것이라고.) 저 유명한 CBGB 클럽에서 라몬즈(The Ramones) 오프닝 무대를 서며 투자자(레이블)들께 자신들의 존재를 알린 밴드는 거기서 새로운 멤버 제리 해리슨(Jerry Harrison, 키보드/기타)까지 영입하는데 성공한다.


77년, 워너 뮤직 산하에 있는 사이어 레코드(Sire Records)사와 계약한 이들은 곧바로 데뷔 앨범 [Talking Heads: 77]을 발매하였다. 허나 지금이야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앨범이지만 당시에는 팬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아 판매고 부진을 면치 못했었다. 다른 좋은 곡들 다 놔두고 싱글 'Psycho Killer'를 내세운 것도 실패의 원인이었으리라. 어쨌든 자신 있게 발매한 데뷔 앨범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자 밴드는 락시 뮤직(Roxy Music) 출신의 브라이언 이노(Brian Eno)를 초청하는 자구책을 강구, 두 번째 앨범 [More Songs about Buildings and Food]를 발매하였다.


누가 참여하였는데 실패하랴. 브라이언의 도움을 등에 업은 두 번째 앨범은 작품성, 흥행성에서 모두 성공했고 덕분에 어둡고 습한 포스트 락 기운을 동반한 세 번째 앨범 [Fear of Music]을 발매하는 멤버들의 어깨는 한층 가벼워질 수 있었다. 아프리카 폴리리듬을 차용하는 등 데이빗 번의 월드 뮤직에 대한 관심이 노골적으로 표현된 네 번째 앨범 [Remain in Light]가 1년 뒤인 80년에 발매된 뒤 잠시 쉬어가는 의미에서 밴드는 지난 77년부터 81년까지 가졌던 투어 실황 음원을 추린 라이브 앨범 [The Name of This Band Is Talking Heads]를 내놓았다. 이즈음 밴드 생활 중 서로 눈이 맞은 프란츠와 웨이마우스가 화촉을 밝혔는데 둘은 뉴웨이브 밴드 탐 탐 클럽(Tom Tom Club)을 조직해 토킹 헤즈와는 또 다른 음악을 시도해본다. 


특히 이들의 싱글 'Genius of Love'는 나중에 힙합 뮤지션 그랜드마스터 플래쉬(Grandmaster Flash)의 'It's Nasty (Genius of Love)'와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의 'Fantasy'에 샘플링 되며 그 빛을 발했다. 뿐만 아니라 락 밴드 해피 먼데이스(Happy Mondays), 레게 뮤지션 지기 말리(Ziggy Marley)같은 뮤지션들의 성공도 알고 보면 다 프란츠와 웨이마우스의 지원에 힘입은 것이다.


다시 토킹 헤즈로 돌아와서. 유투(U2)의 앨범에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또 다른 성공 길을 타기 시작한 브라이언 이노의 도움 없이 그들의 통산 다섯 번째 앨범 [Speaking in Tongues]가 발매되었다. 여기에는 밴드로선 최초로 미국 싱글 차트 탑 텐에 든 'Burning Down the House'가 수록되어 있어 값진 것이 되었다. 이후 세 장의 앨범들([Little Creatures](85), [True Stories](86), [Naked](88))이 줄줄이 선보였으나 초기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드라마같은 느낌이 눈에 띄게 삭아 들어 토킹 헤즈는 결국 91년 해체되고 만다.


밴드가 와해된 뒤 5년이 지나 솔로 활동으로 재미를 보고 있던 데이빗 번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Jerry Harrison, Tina Weymouth, Chris Frantz)은 다시 뭉쳐 'Talking'을 뺀 헤즈(The Heads)를 결성해 앨범 [No Talking, Just Head]를 발매하는 열정을 보였다.(이 앨범에는 블론디(Blondie)의 데보라 해리(Deborah Harry), 인엑시스(Inxs)의 마이클 허친스(Micheal Hutchence), 뉴욕 언더그라운드의 대부 리차드 헬(Richard Hell) 등이 참여해 앨범의 가치를 높여주었다.) 


그러나 밴드의 수명은 그리 길지 못해 단발성으로 끝나고 만다. 한편 제리 해리슨은 브라이언 이노처럼 프로듀서로서도 큰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그가 프로듀싱한 대표 음반을 뽑아보자면 바이올런트 펨므스(Violent Femmes)의 [The Blind Leading the Naked], 파인 영 카니발스(Fine Young Cannibals)의 [The Raw and the Cooked], 크래쉬 테스트 더미스(Crash Test Dummies)의 [God Shuffled His Feet], 라이브(Live)의 [Throwing Copper], 그리고 노 다웃(No Doubt)의 [Return of Saturn] 정도가 있겠다. 


또 정확히 17년을 현역에서 활동한 토킹 헤즈로부터 영향 받은 후배 밴드들 역시 일일이 손에 꼽기가 쉽지 않은데 그들의 앨범 [True Stories] 수록곡 'Radio Head'를 그대로 밴드 이름으로 사용한 라디오헤드(Radiohead), 훵크락의 지존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캐나다 인디 락 밴드 아케이드 파이어(The Arcade Fire) 정도가 대표적이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