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vor Rabin (트레버 라빈)
“나는 실로 많은 시간을 기타 사운드에 투자했다. 사람들이 헤드폰을 끼고 오디오 앞에 앉아 음악을 접할 때 마치 시네마스코프와 같은 영상적인 이미지를 불러일으킴으로써 색다른 감동을 전해주는 게 내가 원하던 기타 사운드였다.”
예스의 기타리스트로 명성을 얻었던 트레버 라빈은 우리들에겐 단지 예스의 기타리스트로만 알려져 있으나 그의 경력을 알게 되면 그 화려함에 놀라게 된다. 1955년 1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에서 태어난 트레버 라빈은 11살 때부터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록기타를 배우기 이전에 이미 그는 많은 클래식 음악들을 접했기 때문에 기타를 배우는 데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더구나 아버지가 요하네스버그 악단의 지휘자였고 어머니도 클래식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에 트레버 라빈은 음악적 활기와 영감이 충만된 공간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기타를 배우기 전에 그는 부모의 권유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웠다. 그 중에서도 피아노 실력은 매우 뛰어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꽤 이름이 있는 피아노 콩쿨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다. 이에 용기를 얻은 그와 부모는 트레버 라빈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할 것을 기원했다. 한데 어느 날 갑자기 그는 록에 묘한 매력을 느껴 클래식과 락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록에 인생을 걸기로 다짐한다. 그때가 14살 때였다.
록커가 되겠다고 결심한 그는 곧바로 그룹을 조직했고 72년경엔 그룹명을 ‘래빗’으로 바꿔 싱글도 몇 장 발표하였다. 이들이 발표한 싱글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내에서 크게 히트해 트레버 라빈은 일약 스타가 되기에 이른다. 77년에 라빈은 래빗을 탈퇴하고 솔로의 길로 들어섰다. 이때부터 그는 작곡가 어레인저 기타리스트 등 1인 3역의 다재 다능한 능력을 발휘하며 만능 아티스트로서 국내에서 명성을 떨치게 된다. 그런 가운데 라빈은 78년 셀프 타이틀의 첫 번째 솔로앨범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신곡 2곡을 추가해 자신의 솔로앨범을 전 세계에 배급토록 했다.(솔로앨범에서 그는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 등을 모두 연주 만능 멀티 플레이어로서의 능력을 과시한 바 있다. 반면 두 번째 솔로앨범에선 드럼만 제외한 모든 악기들을 혼자서 커버하였다.)
스티브 하우의 후임으로 그룹 예스에 가입한 후에도 그는 꾸준히 자신의 기타세계를 고수하며 솔로앨범 활동을 하였다. 트레버 라빈은 남아공화국에서 실로 많은 흑인들과 세션을 했다. 그것이 그의 리듬감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도 라빈을 갖가지 민속적인 비트연주가 가능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게 한다.
트레버 라빈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고 기타로 옮긴다. 즉 그에겐 음악적 편견이 없다. 재즈에서 블루스, 컨트리 앤 웨스턴, 프로그레시브, 심지언 헤비메틀까지 음악적 장점들을 수용하는 것이다. 최근의 그는 60년대의 오픈코드 주법에 관심을 가져 고전적인 보이싱의 연주도 구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근작앨범에 수록된 'Calling'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트레버 라빈은 기타뿐만이 아니라 건반, 베이스, 컴퓨터 뮤직 등에 이르는 거의 모든 기기들을 능란하게 다루는 멀티플레이어이다. 따라서 그의 연주와 음악은 단순히 기타적인 어프로치에 국한을 두고 있지 않다. 건반에서 컴퓨터 미디 등 첨단시스템 접근에 기초해 곡을 만들고 연주하므로 그 표현력과 테마의 현란한 구성은 놀라울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