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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19 21:55
Ultravox(울트라복스)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45  



Ultravox(울트라복스)

 

 
1970년대 후반 영국의 거리는 반항을 모토로 내건 청년들의 아우성으로 가득 찼다. 세 개의 코드만을 가지고 기타를 치며 스타디움 록에 반기를 들었고, 젊음의 힘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정부에 대해서는 '퍽 유(Fuck You)'로 저항했다. 그것은 '젊음의 힘'에서만 잉태할 수 있는 펑크였다.


하지만 그 시각에 울트라복스(Ultravox)는 방안에서 고개를 숙인 채 신디사이저와 컴퓨터 전자음에 몰두해있었다. 이들은 거리의 스리 코드보다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빠져있었고, 선동 구호보다는 '시스템스 오브 로맨스(Systems Of Romance)'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국 이들은 댄서블한 리듬, 정돈된 선율의 보컬 하모니를 부각시키며 보다 팝의 형식에 충실한 음악을 선보였고, 이는 일렉트로닉 팝(Electronic Pop)의 도화선이 되었다.


울트라복스는 1974년 런던에서 존 폭스(John Foxx, 보컬/키보드)를 중심으로 크리스 크로스(Chris Cross, 베이스), 빌리 커리(Billy Currie, 바이올린/키보드), 스티브 시어스(Steve Shears, 기타), 워런 칸(Warren Cann, 드럼)의 4인조로 결성되었다. 존 폭스는 그의 학창 시절 때부터 새롭게 퍼지기 시작한 전자 테크놀로지 음악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인물이다


그룹의 초창기는 매우 불운했다. 77년, 록시 뮤직의 브라이언 이노(Brian Eno)가 이들의 실력을 인정하여 데뷔 앨범 <Ultravox>의 프로듀서까지 맡았지만 첫 싱글이었던 'My sex' 가 밴드의 존재감만 다소 부각시켰을 뿐 대중은 이들을 인정하지 못했다. 같은 해에 선보인 <Ha! Ha! Ha!>와 78년작 <Systems Of Romance>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울트라복스는 계속되는 판매고의 부진으로 소속사인 <아일랜드(Island)>에서 퇴출당했고, 설상가상으로 음악적인 중추였던 존 폭스까지 탈퇴하면서 이내 공중분해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나머지 멤버들은 실패에 굴하지 않고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폭스의 빈자리를 대신할 보컬리스트 밋지 유어(Midge Ure)가 들어오면서 라인업이 재정비되었고, 곧이어 <크리샐리즈(Chrysalis)>와 계약하면서 이전의 기반을 되찾았다.


그리고 1980년, 그들은 4번째 작품 <Vienna>를 내놓는다. <Vienna>는 'Sleepwalk' 와 'Vienna' 두 곡이 차트의 5위권 내로 진입하면서 스매시 히트를 거두었다. 이러한 울트라복스의 성공은 휴먼 리그(Human League), 듀란 듀란(Duran Duran) 등을 필두로 한 영국 일렉트로닉 팝 씬에 커다란 자극이 되었다.


<Vienna>의 성공 이후 그룹은 81년 <Rage In Eden>, 83년 <Quartet>, 84년 <Lament>를 연이어 히트시키며 인기를 지속시켰다. 특히 84년 발표된 싱글 'Dancing with tears in my eyes' 는 영국 차트에서 3위를 기록하며 'Vienna' 와 함께 울트라복스를 가장 잘 정의하는 곡으로 자리 매김 했다.


84년, 팀 내의 새로운 리더였던 밋지 유어가 <Lament>를 끝으로 탈퇴하였고, 또 다시 남겨진 멤버들은 86년 <U-Vox>를 마지막으로 각자의 길을 나선다. 밋지 유어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해체 후에도 별다른 솔로 활동을 보이지 않았고, 또 다른 신스 팝 주자였던 디페쉬 모드(Depeche Mode), 휴먼 리그 등이 스타로 급부상 하면서 서서히 기억속으로 잊혀져갔다. 후에 커리와 사이먼은 유-복스(U-Vox) 라는 이름으로 다시 뭉쳐 96년에 컴백 앨범 <Ingenuity>를 발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