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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19 21:59
Urge Overkill (어지 오버킬)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501  



Urge Overkill (어지 오버킬) 

 
85년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의 교내 밴드 리스트에는 예술사를 전공하는 내쉬 카토(Nash Kato)와 과학도 에디 로저(Eddie Roeser)가 또 하나의 이름을 추가시켰다. 내쉬와 에디 두 학생이 만든 밴드에는 재즈 밴드 팔리아먼트(Parliament)의 'Funkentelechy'라는 노래의 가사에 등장하는 'urge overkill'이라는 단어가 밴드 이름으로 붙여졌다.


어지 오버킬이 교내에서 첫 연주를 가진 날 스티브 앨비니(Steve Albini)라는 언론학과 학생이 이 신생 밴드의 열성 팬을 자처하며 매니저를 하겠다고 나섰다. 스스로 하겠다는데 이를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밴드가 그의 청을 받아들이자 앨비니는 신이 나서 밴드의 매니저, 제작자 역할을 열성적으로 그리고 극성스럽게 수행하기 시작했다. 초창기 어지 오버킬이 성장하는데 있어 앨비니의 역할이 컸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86년에 선보인 첫 작품 [Strange I...] EP로부터 89년의 정식 데뷔 앨범 [Jesus Urge Superstar], [Americruiser](90), [Supersonic Storybook](91) 모두 앨비니가 자체적으로 세운 마이너 레이블에서 차례차례 나왔다.


초창기 어지 오버킬이 직면했던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속할만한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는 거였다. 대학 교내에서 탄생하긴 했지만 애초부터 어지 오버킬은 컬리지 밴드의 전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70년대의 사운드가 혼란스럽게 뒤섞여진 옛날 냄새나는 음악도 그랬지만 실크 셔츠에 더블 정장을 빼입은 멤버들의 패셔너블한 의상 또한 구질구질한 티셔츠 한 벌로 한 철을 나는 대학가 밴드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180도 달랐을 뿐 아니라 80년대의 메인 스트림 음악 씬과도 거리가 한참이나 멀었다. 어지 오버킬의 80년대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위치에 서 있는 시기였고 관중들의 박수보다는 클럽 주인들로부터 쫓겨나는 데 더 익숙한 세월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박대만 당하면서까지 음악을 계속해야 될 필요가 뭐 있는가, 아직 나이도 젊은데 지금이라도 다른 일을 찾자면 못 찾겠는가, 이젠 이 생활을 그만 정리하자'고 마음을 고쳐먹던 91년 이들 앞에 뜻밖의 기회가 주어졌다.

91년 말, 어지 오버킬은 너바나와 함께 91 Nevermind 투어를 돌게 되었다. 물론 헤드라이너는 그런지계의 떠오르는 총아 너바나였고 어지 오버킬은 이들의 오프닝 밴드일 뿐이었지만, 그간 곰팡내나 풍기는 괴짜들 취급을 받던 지하의 존재들이 너바나의 성공을 시작으로 속속들이 지상으로 올라선 그런지 혁명이 일어나던 바로 그 시기에 혁명의 선봉장 너바나에 의해 파트너로 선택됐다는 것은 어지 오버킬 입장에서는 대단한 영광이자 호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애초에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 아닌가 하고 후회를 하며 그만 이 바닥을 털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너바나로부터 연락이 왔다. 너바나가 없었다면 우리도 사라져버렸을 지 모른다." -내쉬 카토-


자신들과 똑같은 3인조 진용에 자신들 못지 않게 어두운 언더그라운드 생활을 맛보던 너바나는 어느새 수만의 관중들을 열광시키는 스타로 변해 있었다. 팬들이 너바나에게 보내는 성원을 어깨 너머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어지 오버킬 멤버들의 마음에는 한결 자심감이 일었다. 너바나와의 투어가 어지 오버킬에게 당장 부와 명성을 안겨다 준 건 아니었지만 음악 관계자들의 관심과 메이저 레이블과의 계약 기회가 제공되었다. 투어를 마친 어지 오버킬은 너바나의 소속 레이블인 Geffen과 계약을 맺었다.

메이저 레이블인 Geffen으로의 이적은 어지 오버킬과 앨비니의 관계 청산을 의미했다. 이 과정은 매끄럽지 못했고 이 이적 사건을 계기로 어지 오버킬과 앨비니의 관계는 급속도로 나빠졌으며 둘 사이에 일어난 공방은 몇 년간 계속됐다. 처음 생겨날 때부터 쭉 자신이 키워온 아이들이 큰 물을 쫓아 자신의 휘하를 떠난다는 사실은 이들에 대한 집착이 유별났던 앨비니에게 깊은 배신감을 안겨다줬다.


"예전에 어지 오버킬은 내 좋은 친구들이었고 나는 그들을 사랑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내 친구들이었노라고 말하기조차 싫다."

어지 오버킬 측은 앨비니와의 결별을 '사랑 싸움이 빚은 결과'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앨비니 측은 지금도 어지 오버킬에 대해 은혜를 저버린 이기적인 배은망덕한 자식들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하며 적의감을 감추지 않는다.


허나 아무리 앨비니가 혼자서 펄펄 뛴다한들 이미 양측의 계약 관계는 사라졌다. 법적으로 완전히 Geffen 소속이 된 어지 오버킬은 그 곳에서 93년 [Saturation]이라는 타이틀로 메이저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이 앨범에 수록한 'Sister Havana', 'Positive Bleeding' 등이 주목을 받았으나 정작 이들을 메이저급 밴드로 올려준 히트곡은 이 앨범의 수록곡이 아니라 EP 앨범에 삽입됐다가 다시 사운드트랙에 들어간 커버곡 'Girl, You'll Be A Woman Soon'이었다.


"'Girl, You'll Be A Woman Soon'의 히트는 전혀 예상 밖의 결과였다.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그 노래를 듣는 것은 충격이었다." -내쉬 카토-


이들을 말할 때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바로 그 노래, 영화 '펄프 픽션'의 삽입곡 'Girl, You'll Be A Woman Soon'은 원래 92년에 반매한 EP [Stull]에 수록됐던 노래다. 영화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가 영국의 레코드 가게에서 음반은 구입하던 중 우연히 이 노래를 발견하여 94년 자신이 감독한 영화 '펄프 픽션'에 삽입시킨 것이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 노래가 히트하면서 가장 놀란 이들은 다름 아닌 어지 오버킬 자신들이었다. 'Girl, ...'은 150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펄프 필션' 사운드트랙의 대표곡이었을 뿐 아니라 어지 오버킬이라는 이름을 대중적으로 알린 일등 공신이 되어 준 것이다.


어지 오버킬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들을 향한 관심도가 커진 95년 9월 이들은 정식 앨범으로는 통산 다섯 번째 작품인 [Exit The Dragon]을 새로 내놓았다. (앨범 타이틀과 관련하여 멤버들은 자신들이 워낙에 이소룡과 그의 아들 브랜든 리의 팬인 관계로 이들을 기리는 의미로 용(dragon)을 앨범 타이틀로 등장시켰다고 주장하나 'dragon'이 마리화나를 가리키는 은어로도 쓰여진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바, 마약의 의미가 내포됐을 거라는 추측도 있다.)


새 앨범에 대해 주변에서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Girl, You'll Be A Woman Soon'으로 인해 어지 오버킬을 좋아하게 된 팬들이 과연 새 앨범도 좋아하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인데 이에 대해 드러머 블래키 오는 사람들의 반응을 예측할 순 없지만 이번 음반이 상당히 알찬 음반이라고 자신한다. 그의 이러한 자신감을 뒷받쳐주려는 듯 [Exit The Dragon]에는 각 음악 잡지 리뷰란에서 대단히 후한 평가가 계속 쏟아지고 있다.


어지 오버킬 특유의 복고적인 사운드가 잘 담겨진 'Somebody Else's Body', 'Last Night/Tomorrow'에는 단순히 '옛날'풍이 아닌 시대 초월적인 불가사의의 매력이 있다. 멤버들의 표현대로 'something old & something new의 timeless한 사운드'인 것이다. 'Girl, ...'이 히트한 뒤 어지 오버킬은 이 노래의 오리지널 가수이자 작곡가인 닐 다이아몬드와 상견례의 기회를 가졌었다. 이 때 대선배 닐은 이 새까만 후배들에게 격려반, 농담반 삼아 이런 말을 던졌다.

"음악계에서 일하고 싶다구? 행운을 비네. 차트에 높이높이 올라가길 바래. 정상에 올라가거든 한구석에 내 앉을 자리도 좀 마련해 주구."


이제 막 본격적인 레이스에 들어선 어지 오버킬에 대한 대선배의 바램을 실현가능케 해주는 촉매제는 바로 이들의 독특함과 초월성에 있음이 너무도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