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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19 22:08
Van Halen (밴 헤일런)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39  



Van Halen (밴 헤일런)
 


 
밴 헤일런은 현재까지 미국에서만 5천만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올리며 에어로스미스(Aerosmith)와 더불어 현존하는 미국최고의 하드락 밴드로 꼽힌다. 네덜란드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에드워드 밴 헤일런(Edward Van Halen)과 알렉스 밴 헤일런 형제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작곡법과 피아노를 배우며 성장했다. 그러나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부모의 교육 방식에 반항하기 시작, 73년 미국행 여객선의 승객으로 위장해 미국으로 밀입국한다.


이들을 비롯해 초대 보컬인 데이빗 리 로스(David Lee Roth)와 베이시스트인 마이클 앤소니는 폭행, 절도 등의 혐의로 수감됐던 감옥에서 만난 친구 사이로 멤버들의 과거(?)가 모두 범상치 않다. 밀입국한 후 모진 고생을 하며 LA시내를 돌아다니던 밴 헤이런 형제는 우연히 데이빗과 마이클을 만나고 의기투합한 이들은 마모스(Mammoth)라는 밴드를 결성한다. 이후 산타나(Santana), UFO, 키스(Kiss) 등 쟁쟁한 그룹들의 오프닝 밴드로 활동하며 경력을 쌓아가던 이들은 77년 워너 브라더스와 계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으로 팝계에 모습을 드러낸다.


단 3주일의 제작기간을 거쳐 발표한 데뷔앨범 [Van Halen]에 나타난 에디의 기타 플레이는 당시 엄청난 충격 그 자체였다. 지금은 누구나가 즐겨 사용하는 라이트핸드(Right Hand) 주법이나 양손태핑 등은 에디에 의해 최초로(공식적으로) 시도된 테크닉이었다. 예의 라이트핸드 주법이 빛나는 1분대의 연주곡 'Eruption', 싱글로 크게 히트한 'Running with The Devil', 'You Really Got Me' 등의 곡들에서 보여진 에디의 기타 플레이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현재까지도 이 앨범은 메탈 역사에 남을 명반으로 취급받으며 꾸준히 팔려나가고 있으며 이미 1천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들은 이듬해에 1집과 비슷한 포맷의 2집 [Van Halen II]를 발표하는데 'Dance The Night Away'가 싱글차트 15위에 오르는 대히트를 하며 쉽게 플래티넘을 따내 소포모어 징크스를 무난히 벗어났다. 애초에 대단한 실력이었지만 에디의 기타 플레이는 이후에도 계속 발전 양상을 보였으며 3집 [Woman And Children First](80)에서 실험적인 면모까지 갖추기 시작한다. 3집 역시 'And The Cradle with Rock'이 55위의 히트를 기록했고, 또다시 플래티넘을 따내는 기염을 토한다.


1981년에 발표된 4집 [Fair Warning]에서 에디의 실험정신은 극으로 치달으며 매니아들과 평론가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이듬해에 이들은 자신들의 곡이 아닌 선배 그룹들의 곡을 리메이크해서 수록한 [Diver Down]을 발표한다. 정규앨범의 성격이 약한 이 앨범에선 'Pretty Woman'이 12위, 'Dancing in The Street'이 38위에 올랐고 당시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현재 400만장 돌파)를 올리는 좋은 성과를 거뒀다.


1983년 12월, 이들은 싱글 'Jump'를 발표한데 이어 12월 31일 대망의 6집 [1984]를 발표한다. 그리고 이듬해 1월 'Jump'가 싱글 차트 정상에 5주간 머무르는 폭발적 히트를 기록하며 순식간에 플래티넘을 따냈고, 계속해서 'I'll Wait', 'Panama' 등이 연이어 13위에 랭크되며 [1984]의 대대적 성공(당시 500만장 판매)에 적잖은 기여를 했다. 음악적으로 볼 때 이들의 6집 [1984]에서는 무엇보다도 에디의 혁신적인 신디사이저 연주가 빛을 발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5150], [OU812]에까지 이어진다. 'Jump'를 통해 보여준 매력적인 신디사이저 연출은 당시 유행처럼 퍼졌고 팝음악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84]의 대성공으로 인해 밴 헤일런은 어느덧 미국의 대표 그룹으로 자리매김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에디의 음악적 방향에 반기를 든 데이빗이 솔로 전향 의사를 밝히며 팀을 떠나는 충격적인 뉴스가 팬들을 의아하게 만든다. 밴 헤일런은 즉각 이 자리를 새미 해이거(Sammy Hagar)로 대체했다. 밴드가 음악계의 정상에 오른 시점에서 뜻밖의 진통을 겪은 이들은 새미와 함께 새출발의 결의를 다지며 7집 제작에 들어간다.


1986년 중반, 새미와 함께 작업한 첫 앨범이자 통산 7집인 [5150]이 발표되었다. 7집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신디사이저 연주에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다. 싱글 'Why Can't This Be Love'가 3위에 랭크되며 호조를 보인 이 앨범은 똑같이 22위를 기록한 'Dreams'와 'Love Walks in'의 히트 행진에 힘입어 전작에 결코 뒤지지 않는 놀라운 성적을 올렸다. 본작은 또한 밴 헤일런에게 앨범차트 1위의 기쁨을 안겨준 앨범이기도 하다.


이로써 데이빗의 빈 자리를 새 보컬리스트 새미 헤이거가 완벽하게 메꾸었다는 자신감을 얻은 밴 헤일런은 88년에 들어서 8집 [OU812]를 발매한다. [5150]과 마찬가지로 이 앨범 역시 앨범차트 1위에 랭크됐지만 의외로 싱글의 활약은 저조했다. 'Black & Blue'가 34위에 오른 게 전부다. 그러나 차트순위와는 별개로 연일 계속되는 공연은 팬들을 완전히 매료시켰으며 앨범은 가뿐히 3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대대적인 투어 공연 이후 밴 헤일런은 3년간의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긴 침묵 끝인 91년에 컴백한 이들은 통산 9집인 [F.U.C.K.]을 앨범차트 1위에 랭크시키며 팬들의 오랜 갈증을 단숨에 해소시켜 주었다. 수록곡중 'Poundcake'에선 에디의 드릴을 이용한 기타연주가 빛을 발하고 있으며 이 연주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미스터 빅(Mr. Big)의 'Daddy, Brother, Lover, Little Boy'라는 곡에서 폴 길버트(Paul Gilbert)가 들려준 드릴플레이와 함께 많은 찬사를 받았다. 200만장을 쉽게 돌파한 [F.U.C.K.]는 평론가들의 대대적 호평을 받았고 밴 헤일런은 이듬해 2월에 열린 그래미 시상식(Grammy Awards)에서 '최우수 하드락/헤비메탈 앨범'상을 거머쥘 수 있었다.


9집의 대성공으로 80년대 중반 이후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은 이들은 93년에 최초의 라이브앨범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9집의 투어 중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Presno)에서 열린 공연 실황을 녹음한 더블 앨범이었다. 이 앨범은 라이브일 뿐만 아니라 더블 앨범인데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더블 플래티넘을 따냈고 앨범과 함께 발매된 뮤직비디오도 플래티넘(비디오는 10만장이 플래티넘)을 기록한다.


95년에 이들은 통산 11집인 [Balance]를 발표하고 거의 팝적인 스타일의 'Can't Stop Lovin' You'를 30위에 올려놓는 저력을 과시하면서 헤비메탈이 전반적인 하강세이던 시기적인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예전처럼 더블 플래티넘을 따내며 슈퍼 밴드의 명성을 드날렸다.


이듬해인 1996년에 들어서 이들은 또 한장의 베스트앨범을 발표하는데 이 앨범을 제작하기 직전 새미 헤이거가 밴 헤일런 형제와의 불화로 해고되고 이전 멤버였던 데이빗 리 로스가 앨범의 신곡 제작에 참여하는 이변이 벌어졌다. 선임자인 데이빗 리 로스가 불렀던 곡은 절대 부르지 않을 정도로 고집스럽고 에고가 강했던 새미 헤이거가 베스트 앨범 제작에 극력 반대했다는 후문인데 결국은 새미 헤이거의 퇴출로 일단락되었다.


데이빗이 신곡 작업에 참여한 것을 두고 팬들과 언론들은 데비잇이 재영입됐다고 반가워 했으나 밴 헤일런은 베스트 앨범 제작 후 새미 헤이거의 후임으로 96년 말에 해체된 익스트림(Extreme)의 보컬 게리 셰론을 영입한다. 데이빗 리 로스로선 치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1998년 초 게리와 함께한 첫 작품이자 이들의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통산 12집 [Van Halen III]가 발매되었다. 밴 헤일런 자신들은 이 앨범을 두고 '밴 헤일런 역사상 최고',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에 견줄만한 완성도' 운운했지만 성적은 참담했다. 첫 싱글 'Without You'가 메인스트림 록 트랙스(Mainstream Rock Tracks)차트에서 7주간 1위로 랭크됐지만 싱글 차트 히트곡은 없었고, 앨범도 고전을 면치 못한 채 골드에 그치고 말았다. 이를 두고 밴 헤일런의 거듭되는 보컬 체인지에 팬들이 식상했다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