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ve Pipe(버브 파이프)
미국의 미시건에서 출발한 5인조 얼터너티브 록밴드 버브 파이프(Verve Pipe)의 결성 년도가 1992년이라는 것은 이들이 얼터너티브 그런지의 직접적인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4년 간의 무명 생활을 견뎌내고 1996년에 공개한 <Villains>의 성공으로 버브 파이프는 라이브(Live), 퓨얼(Fuel), 토닉(Tonic), 부쉬(Bush), 크리드(Creed), 푸 파이터스(Foo Fighters) 등과 함께 너바나(Nirvana)의 <Nevermind> 이후의 얼터너티브 록을 이끌어 갈 차세대 주자로 손꼽혔다.
브라이언 밴더 아크(Brian Vander Ark/기타, 보컬)와 브래드 밴더 아크(Brad Vander Ark/베이스) 형제를 중심으로 도니 브라운(Donny Brown/드럼), 브라이언 스타웃(Brian Stout/기타)으로 시작한 버브 파이프는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스타웃이 곧 A. J. 더닝(A. J. Dunning)으로 교체되었고 사운드 보강을 위해 키보디스트 더그 코렐라(Doug Corella)를 새로 영입하면서 5인조로 진용을 갖추었다.
그룹 결성과 동시에 이들은 인근 대학가를 중심으로 지역적인 활동을 펼치면서 인디 앨범 <I've Suffered A Head Injury>와 <Pop Smear>를 발표해 언더그라운드 음악계와 대학가에서 나름의 지분을 얻기 시작했으며, 1996년 일본의 가부키 연극을 연상시키는 짙은 화장으로 유명한 록밴드 키스(Kiss)의 오프닝 무대를 맡으며 이들은 통산 3번째이자 메이저 데뷔 음반인 <Villains>를 공개하면서 전도 유망한 록 밴드의 출현을 알렸다.
이들의 가능성을 알아본 펑크 밴드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멤버이자 라이브(Live)의 앨범들을 프로듀스했던 제리 해리슨(Jerry Harrison)의 도움을 받은 이 앨범은 전작들에 비해 세련된 작곡 감각이 구현되었다는 평을 받았다. 이 앨범에서는 애초'Photograph'가 주목을 받았으나 국제적인 밴드로 도약하게 된 것은 해를 넘겨 발표된 싱글 'The Freshmen'이 크게 히트하면서였다.
예전 브라이언과 브래드 형제가 동시에 좋아했던 여성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가슴 아픈 기억을 아름다운 멜로디로 승화시킨 이 곡은 원래 1집 <I've Suffered A Head Injury>에 수록되었다가 사장된 노래였으나 이를 아쉬워했던 밴더 아크 형제가 발라드 스타일의 앨범 버전과 록에 비중을 둔 버전 두 가지 형식으로 발표, 큰 성공을 낚았다. 차트 42주간 머물며 5위까지 오르며 골드레코드를 기록했다.
이후 <The Verve Pipe>와 <Underneath>를 1999년과 2001년에 발표해 미 본토에서는 좋은 평가를 얻었지만 국내에서는 라이센스화 되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의 록 팬들은 이들의 음악을 듣고 정확히 판단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얼터너티브 그런지가 10여년 전을 휘두른 충격파를 재현하지 못하는 데다, 록보다 팝과 흑인 음악이 강세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버브 파이프를 비롯한 포스트 그런지 밴드들에게 미래의 밝은 햇살 아니면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질지는 앞으로 본인들의 노력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