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nes, The(바인스)
바인스는 누가보아도 크레이그의, 크레이그에 의한, 크레이그를 위한 밴드다. 앨범의 모든 곡이 그의 손끝에서 써지고 완성되며 신문, 텔레비전, 매거진을 장식하는 인물도 언제나 크레이그 니콜스다. 팀의 시스템이 그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며 팬들은 생각한다. “멤버들, 성격도 좋네.”
집안의 기대에 못 이겨 미술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배우던 크레이그 니콜스(Craig Nicholls, 보컬/기타)는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음을 깨닫고 자퇴한다. 그 후 패스트푸드 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같은 식당에서 일하는 패트릭 매튜스(Patrick Matthews, 베이스)와 그의 친구 데이비드 올리프(David Olliffe, 드럼)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코드를 발견한다. 너바나의 열성 팬이라는 것과 직접 음악을 하고 싶어 한다는 점. 그리하여 세 사람은 크레이그의 부친이 1960년대에 활동했던 밴드, 바인즈(Vynes)를 인용해 바인스(The Vines)를 결성하게 되었다.
크레이그의 방에 모여 너바나와 킹크스(Kinks)의 곡을 카피하며 기반을 쌓은 그들은 2001년 영국에서 한정판으로 발매한 EP < Factory >로 미국의 캐피탈 레코드와 계약하는 행운을 거머쥔다. 뿐만 아니라 벡(Beck), 엘리엇 스미스(Elliot Smith), 푸 파이터스(Foo Fighters)의 음악을 제작한 롭 슈나프(Rob Schnapf)의 조력으로 메이저 데뷔를 향해 본격적으로 전진하는 기회까지 찾아왔다. 그러나 정신 쇠약으로 조울증에 빠져있던 데이비드 올리프가 팀을 떠나는 예기치 못한 난관에 부딪치는데 이유인즉, 크레이그와 데이비드의 관계가 심상치 않았다는 것이 매튜스의 증언이다. 모집 광고를 보고 찾아온 해미시 로서(Hamish Rosser, 드럼)와 크레이그의 지인인 라이언 그리피스(Ryan Griffiths, 기타)를 맞이하면서 가까스로 완성한 < Highly Evolved >로 바인스의 줄기는 거세게 뻗어가기 시작한다.
크레이그의 오랜 우상인 너바나의 원초성과 비틀즈의 스마트함을 동시에 담은 'Factory', 'Highly evolved', 'Get free' 등은 유순하면서도 난폭한 로큰롤의 양면성에 충실한 곡들이었다. 화이트 스트라입스(The White Stripes)와 스트록스(The Strokes)를 필두로 개러지 록의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던 미국이 그들의 외침에 유난히 적극적인 호응을 보내며 빌보드 앨범 차트 11위를 양보하는 인심을 베풀자 이에 질세라 아리아 어워드(Aria Awards)도 신인 아티스트 싱글상을 수여하는 등 고향인 호주에서도 바인스를 반기는 눈치였다.
밴드의 주가는 상승기류를 타고 있었지만 내부 상태는 그다지 평탄치 못했다. 스테이지에서 크레이그와 매튜스의 말다툼이 빈번해자 라이브 공연에 무성의한 태도에 심기가 언짢아진 관중들의 항의가 들어왔다. 밴드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의사의 꿈까지 유보한 매튜스는 괴짜인 크레이그의 정신 착란을 진정시키는 유일한 인물로서, 처음 크레이그를 만났을 때는 “굉장히 음악에 박식한 녀석이군.”이라고 생각했으나 시간이 흐르고 그의 난동이 잦아질수록 “어차피 같이 일하려면 성격 좋은 녀석이 낫겠군.”이라고 생각을 고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파란 많은 데뷔 활동을 마치고 두 번째 선보인 앨범 < Winning Days >에 대해 멤버들의 자신감을 전작을 능가했다. 미래지향적인 사운드에 초점을 맞추고, 무엇보다 뉴욕이라는 대도시의 양기가 흡수된 녹음 작업이 만족스러웠을 터이다. 그러나 초반에 너무 많은 것을 보여준 탓에 부풀대로 부푼 대중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결국 차트에서도 큰 빛을 보지 못한 채 밀려나는 쓰라림을 맛보았지만 'Ride' 같은 곡에서는 여전히 중독성 강한 굉음을 내고 있다.
소포모어 징크스의 후유증까지 더해져 2004년 말, 크레이그는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페르가 증후군을 진단받은 한편, 카메라맨을 폭행한 혐의로 법정까지 출두했다. 바인스의 기동력인 그의 일탈은 밴드의 앞날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음을 묵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