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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25 00:20
Wet Wet Wet(웻 웻 웻)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66  



Wet Wet Wet(웻 웻 웻)

  
 

뉴 웨이브, 뉴 로맨틱 음악의 기수로서 듀란 듀란(Duran Duran), 컬쳐 클럽(Culture Club) 등 영국 가수들이 제 2의 영국 침공이라는 이름 하에 전 세계 팝계의 흐름을 주도해나가던 80년대 초반,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 지방의 고등학생 마크 맥로린(Mark MaLoughlin)은 선배 영국 음악인들이 세계 팝 음악계에 이루어 놓은 업적을 계승하겠다는 거창한 꿈을 지니고 친구들과 함께 보텍스 모션(Vortex Motion)이라는 아마추어 팝 밴드를 결성했다.


멤버는 보컬을 담당한 마크 외에 베이스에 그렘 클락(Graeme Clark), 키보드에 닐 미첼(Neil Mitchell), 드럼에 토미 커닝엄(Tommy Cunningham) 네 사람으로 이들은 모두 학교 친구 사이였다. 마크 맥로린이라는 평범한 이름이 마티 펠로우(Marti Pellow)로 바뀌고 그가 이끄는 그룹 이름 역시 스크리티 폴리티(Scritti Politti)의 'Getting, Having And Holding'의 가사에서 한 구절을 딴 Wet Wet Wet이라는 이름으로 바뀌는 대대적 개명 바람이 인 것은 그룹 결성 얼마 뒤의 일이었다.


귀여운 용모를 지닌 네 소년으로 이루어진 Wet Wet Wet의 출발은 상당히 순탄한 편이어서 1985년에는 메이저 레코드사와 계약이 체결됐고 87년에는 데뷔 앨범도 나왔다. 소울 음악을 기저에 깐 부담 없는 팝 음악을 지향하던 Wet Wet Wet은 소울 음악의 제왕 앨 그린(Al Green)의 앨범을 제작한 바 있는 윌리 미첼을 프로듀서로 맞아들여 데뷔 앨범 [Popped In Souled Out]을 만들었다. 기타리스트가 없는 이 그룹의 기타 연주는 그렘 더핀이라는 친구가 맡아주었다.


데뷔 앨범에서 처음으로 싱글 커트된 뉴웨이브 풍의 경쾌한 댄스 음악 'Wishing I Was Lucky'는 영국 차트 6위까지 진출했고 그 뒤를 이어 비틀즈(Beatles)의 작품을 커버한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가 싱글 차트 1위를, 그리고 데뷔 앨범 역시 앨범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신인 그룹 Wet Wet Wet의 순조로운 항진은 한동안 계속되어 데뷔 앨범은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총 450만장이 팔렸고 영국판 그래미상에 해당되는 88년도 Brits 시상식에서는 최우수 신인상을 받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이 무렵의 Wet Wet Wet은 전형적인 틴 아이돌 스타로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잡지들의 단골 표지모델이었다. 엘튼 존(Elton John)의 미국 투어에 오프닝 그룹으로 서기도 하고 찰스 황태자가 주최한 자선 공연에 출연하는 등 바쁜 나날 속에서 88년에 내놓은 두 번째 앨범 [The Memphis Sessions]도 앨범 차트 3위까지 올랐고 소울 음악의 내음이 짙게 배인 'Sweet Surrender'는 싱글 차트 6위까지 올라갔다. 89년에 발표한 세 번째 앨범 [Holding Back The River' 또한 앨범 차트 3위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은 언제까지나 이들을 틴 아이돌 스타로 묶어둘 수는 없었다. 파릇파릇 앳되게만 보이던 얼굴에도 어느새 20대 중반이란 나이를 속일 수 없게 엷은 잔주름이 그어지기 시작했고 한 때 자신들이 단골로 표지를 장식했던 청소년 대상 잡지는 더 젊고 더 파릇한 새로운 십대 스타들로 채워졌다.


[Holding Back The River] 앨범에서 싱글 커트시킨 곡들 역시 재즈풍의 'Hold Back The River'가 31위, 레게 사운드를 실은 'Stay With Me'가 30위, Bouzoki라는 악기를 사용하여 영롱한 반주를 들려준 'Put The Light On'은 56위까지밖에 오르지 못하는 등 다양한 음악적 시도에도 불구하고 차트 하위권을 맴도는 저조한 성적이 계속되며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까지 Wet Wet Wet의 인기는 쇠락해 갔다.


이에 주위에서는 이제 Wet Wet Wet도 사라질 때가 왔다는 식으로 성급한 결론이 나오기도 했다. 나날이 새롭게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스타들 앞에서 맥을 못 추며 Wet Wet Wet은 하나의 뼈아픈 진리를 아로새기게 되었다. 십대라는 시기 자체가 짧고 불안정한 시기이듯 틴 아이돌이라는 존재도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는 불안정한 지위이며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틴 아이돌이라는 이미지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음악적으로 진정한 거듭나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Wet Wet Wet에게 있어 전환의 중요한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이를 입증하듯 보다 성숙해진 모습으로 92년 초 발표한 아름다운 발라드 'Goodnight Girl'은 참으로 오랜만에 영국 차트 정상을 다시 밟았고 새 앨범 [High On The Happy Side] 역시 당당하게 앨범 차트 정상에 등극하여 Wet Wet Wet은 죽지 않았음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었다. 이후 라이브 공연을 활발하게 벌이며 오랜 소망이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의 공연과 에딘버러 성에서의 공연도 성공리에 가졌고 93년에는 로열 앨버트 홀에서의 공연 실황을 담은 첫 라이브 앨범 [Live At Royal Albert Hall]을 발매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사랑의 아름다움을 감미롭고 잔잔하게 그린 'Love Is All Around'가 영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의 주제가로 사용되면서 올 여름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싱글 차트를 휩쓸며 전 유럽에 일약 Wet Wet Wet 선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타국의 음악에 배타적인 경향이 있는 미국에서는 별다른 주목을 얻지 못했다. 전 유럽을 휩쓴 대히트곡도 빌보드 차트에서는 고작 41위까지 밖에 오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