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dchase (윈드체이스)
Windchase는 호주 출신의 프로그래시브/락 밴드로, 1967년 Sebastian Hardie Blues Band로 출발하였다.
Sebastian Hardie Blues Band는 리드기타를 맡은 Graham Ford가 결성했는데, 밴드의 이름처럼 주로 R&B와 소울음악을 카피하던 무명지방 밴드였다. 1968년 같은 고등학교 출신인 Jon English(vocal), Plavsic 형제(bass& Drum)가 영입되면서 밴드명을 blues를 빼서 Sebastian Hardie로 개명하였다.
Sebastian Hardie는 1969년 전설적인 록 밴드 Johnny O'keefe의 백밴드로 1년을 보냈다. 그러나 1971년 보컬을 맡은 John English가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유다역을 맡으며 밴드를 배반하는 일이 생긴다. 결국 보컬이 없어진 밴드는 일시적으로 해산하게 된다.
1972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Ford와 Plavsic형제가 Steve Dunne(vocal, keyboard)를 영입하여 밴드를 다시 결성하였으나 클럽에서 팝음악들을 카피 연주하며 생활을 연명한다. 우연히 클럽에서 이들을 본 영국인 프로듀서 Larry Page가 이들의 실력에 감탄하여 싱글앨범 발매를 도와주게 된다. 싱글 앨범 한달 후, 기타리스트가 Ford에서 19세 약관의 Mario Millo로 교체된다.
후에 Windchase의 리더가 되는 Mario Millo는 1955년 시드니에서 태어났으며, 음악적 백그라운드를 갖고 있는 이태리 부모님 밑에서 다양한 악기를 섭렵하였다. 12세의 나이로 밴드를 만들고, 14세의 나이로 "The Click"이란 밴드에 들어가 "Battle of the Bands"라는 경연대회에 나가 1등상을 수상함으로써 실력파임을 입증하였다. 기타 뿐아니라 작곡에도 재능이 풍부해서 밴드생활청산(Sebastian Hardie와 Windchase)후에도 영화음악과 TV시리즈물 음악으로 대성하였다.
1974년 Sebastian Hardie의 2번째 싱글 발표하였는데, Millo의 천부적 재능으로 밴드의 방향성이 바뀌게 된다.
창조적이고, 오케스트레이션이 가미된 2번째 싱글은 소위 심포닉 록(Symphonic Rock)의 분위기를 보였다. 호주를 방문한 Lou Reed와 Osibisa의 투어에 Opening Band로 활약하던 Sebastian Hardie는 1974년 말, 클래식음악으로 중무장한 키보디스트 Toivo Pilt가 Steve Dunne의 자리를 밀어내고 새로운 멤버로 영입되었다.
1975년 호주를 방문한 네덜란드 출신의 수퍼그룹 Focus와 한무대에 서기도 하였으며, 드디어 첫 앨범 "Four Moments"를 발표하였는데 의외의 인기폭발로 3만 5000장이 팔려, 골든앨범이 된다. 호주차트 13위까지 치고 올라가고, 이들의 곡 Rosanna는 연주곡으로는 드물게 싱글차트 31위까지 올라간다.
1976년에는 Sebastian Hardie의 2번째이자 마지막 앨범인 "Windchase"를 발매하며 전작같은 대박을 기대했으나, 흡족한 결과는 얻지 못하여, 결국 1977년 Plavsic형제가 떠나면서 밴드는 와해되게 된다.
Millo는 대부분이 자기 곡이었다면서 밴드명을 달라고 했지만, Plavsic형제가 Sebastian Hardie에 대한 밴드명 권리를 주장하여 Millo가 법정공방에서 패소하게 된다. Millo는 어쩔 수 없이 Doug Bligh(드럼, 퍼커션), Duncan MgGuire(베이스)을 영입해서 두 번째 앨범제목에서 따온 Windchase라는 밴드로 새 출발한다.
Windchase는 실질적으로 Sebastian Hardie의 세번째 앨범이라고 할 수 있는 "Symphinity"을 발표한다. "Symphinity"는 이전의 작품들 보다 세련되고 더욱 아름다운 선율들을 공급하였으나, 훌륭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음악조류에 영합하지 못해(펑크와 뉴웨이브의 출현) 결국 실패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