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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25 00:08
War(워)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07  



War(워)  

 

 

1970년대 펑키(funky), 소울(soul), 재즈 그리고 록을 결합한 고유상표의 음악을 창조, 일련의 팝 히트곡을 낸 추억의 흑백 혼성그룹이다. 그들의 펑키한 멜로디와 정치성이 강했던 음악은 1990년대 들어와 신세대 록과 힙합 그룹에게 암암리에 영향력을 미친 그룹으로 재조명된 바 있다. 애초 애니멀스(Animals) 출신의 백인 블루스 로커 에릭 버든(Eric Burden)이 그룹의 간판으로 활동했으며 우리들에게는 'Before the rain' 등 감성적인 하모니카 연주를 들려준 리 오스카(Lee Oskar)가 몸담았던 그룹으로도 유명하다.


영국의 록그룹 애니멀스의 리더였던 에릭 버든은 1969년 잠시 활동을 중단하고 있다가 작곡자 겸 프로듀서인 제리 골드스타인(Jerry Goldstein)의 기획에 따라 블루스를 기반으로 한 그룹을 구상했다. 1970년 미국으로 건너와 로스앤젤레스에서 새 그룹을 만들었고 이 것이 에릭 버든 앤 워(Eric Burden And War)였다.


멤버들은 1960년대 크리에이터스(Creators)에서 나이트 시프트(Night Shift)란 이름으로 캘리포니아 롱 비치에서 활동하던 흑인 플레이어들이 중심이 되었다. 건반을 연주하며 노래하는 로니 조단(Ronnie Jordan), 기타 하워드 스코트(Howard Scott), 색소폰과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찰스 밀러(Charles Miller) 베이스 피터 로센(Peter Rosen) 그리고 드럼 해롤드 브라운(Harold Brown)이 그들이었다. 워에는 당시 버든과 친교하던 백인 하모니카주자 리 오스카가 포함되었다. 그룹이름은 당시 1970년대 평화물결에 대한 집착과 상반(相反)하려는 의도에서 붙였고 거기에는 이들의 정치적 지향이 담겨있었다.

곧바로 피터 알렌이 약물과용으로 숨지자 전 크리에이터에서 베이스를 연주하던 비 비 디커슨(B. b. Dickerson)이 들어왔고 건반주자 토마스 알렌(Thomas Allen)이 추가로 영입돼, 7인조 라인업이 확립됐다. 1970년에 발표된 첫 앨범 <Eric Burden Declares War>에서 'Spill the wine'이 차트3위에 오르며 골드 레코드를 기록, 단숨에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1971년 2집 <The Black man's Burden>의 발표와 함께 2월에 단행된 에릭 버든은 유럽 순회공연에서 피로함이 역력해 공연을 마치지 못한 채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가 버렸다. 그룹과 매니저는 그 없이 활동하기로 결정했다.


에릭 버든 없이 그 해 5월 발표된 앨범 <War>에서는 싱글 'All day music(36위)'가 커트되었고 로니 조던이 리드보컬을 맡고 난 이 때부터 워의 전성기가 열렸다. 에릭 특유의 샤우트 창법을 버리고 펑키하면서 라틴 풍의 리듬을 살린 곡들이 발표되어 차트와 시장을 성공적으로 공략했다. 이듬해인 1972년 신보 <All Day Music>에서 편집하여 새롭게 다듬은 싱글 'Slippin' into darkness'는 차트16위에 머물렀지만 골드를 달성했고 그 해 겨울 내놓은 새 앨범 <The World Is Ghetto>는 2주간 앨범차트 정상을 차지하면서 단숨에 밀리언셀러가 됐다.


완연한 펑키 및 소울 냄새가 물씬한 이 앨범의 타이틀곡은 10분 길이였고, 수록곡 'City, country, city'는 러닝타임이 13분이나 됐다. 싱글 'The world is ghetto(7위)'와 'The Cisco kid(2위)'는 모두 골드 디스크를 따냈다. 이후 'Gypsy man(8위)' 'Me and baby brother(15위)', 라이브 'Ballero(33위)'에 이어 1975년 앨범 <Why Can't We Be Friends>에서 타이틀곡(6위)과 라틴 풍 펑키 'Low rider(7위)'가 연속 빅히트를 쳤다. 특히 'Why can't we be friends'는 당시 지구궤도 순환에 모처럼 조우한 미소(美蘇) 우주인에게 보내는 축하 곡으로 채택되어 지금도 그룹 워를 대표하는 노래로 남아있다. 하지만 골드가 된 그 해 여름의 싱글 'Summer(7위)'을 끝으로 이들은 다시 차트 톱10에 복귀하지 못하게 된다.


1976년 그룹과 유나이티드 아티스트(United Artists)와의 마케팅을 둘러싼 갈등으로 소속 레이블을 옮기고 인원이 잇따라 교체되면서 그룹은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리 오스카도 이 무렵 솔로활동을 개시했다. 그러나 그룹은 블루 노트, MCA, RCA로 옮겨 다니면서도 1980년대 내내 지속적인 활동을 펼쳤다. 1990년대 초반 그들의 앨범이 재발매된 가운데 R&B와 힙합에 대한 그들의 영향이 신세대 그룹들에게 평가되면서 다시 관심이 일기 시작했다. 복원된 인기를 밑천으로 모처럼 만든 1994년 신보 <Peace Sign>는 평단의 격찬을 낳았다.


스카펑크 그룹 스매시 마우스(Smash Mouth)는 1997년 앨범 <Fush Yu Mang>에 'Why can't we be friends'를 리메이크했고 그 해 개봉된 영화 <부기 나이츠>(Boogie Nights)에 'Spill the wine'이 삽입되는 등 1970년대 소울 펑키 복고 붐이 일면서 그들의 노래는 지금도 끊임없이 라디오에서 울려 퍼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