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Pac (투팍) 랩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투팍(2Pac)은 힙합의 프로그레시브에 앞장섰던 중추적 인물이자 웨스트 코스트(West Coast) 힙합 씬(Scene)을 대표하던 갱스터 래퍼이다. 그는 또한 1990년대 팝 계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는 이스트 코스트와 웨스트 코스트의 랩 배틀로 인해 2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스타이기도 하다.
살아생전 당시 음악활동을 비롯해 영화배우, 시인, 흑인 인권운동가로서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이고 굴곡의 인생을 살다간 투팍은 대중적 인지도면에서 여타의 래퍼들보다 특출했다. 특히 흑인사회, 더 나아가서 미국사회에 대한 반항적인 메시지로 하층민의 삶을 대변해주기도 했던 그는 지금까지도 후배 래퍼들에게 적잖이 영향을 끼치며 사후(死後) 힙합 계 최고의 인물로 추앙 받고있다. 흑인 과격 단체 블랙 팬더(Black Panther)의 멤버였던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투팍 샤커(Tupac Shakur)는 1971년 뉴욕의 브룩클린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잉태되기도 전 부모들의 이혼으로 투팍은 어린 시절을 홀어머니인 아페니 샤커(Afeni Shakur)의 손에 의해 길러졌다.
10대 성장기 시절 투팍은 볼티모어 예술학교(Baltimore School of the Arts)에 다니면서 랩 가사 쓰기와 연기에 몰두했다. 그가 학교를 졸업할 즈음이 되서야 그의 가족들은 뉴욕을 떠나 서부 캘리포니아주 마틴 시티(Marin City)로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고 그곳에서 투팍은 자신의 장래를 기약하게 된다. 결국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던 랩 그룹 디지털 언더그라운드(Digital Underground)의 백업 댄서 겸 래퍼로 활동하며 대중 음악과의 인연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1991년 말 솔로 데뷔작 <2Pacalypse Now>(1992)을 발표하며 자신의 존재를 조금씩 음악계에 각인시켜 나갔다. 금새 음반은 힙하퍼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해지며 R&B/힙합 앨범차트에 13위까지 올랐고, 싱글 'Brenda's got a baby'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 후 투팍은 연기에도 재능을 보여 다수의 영화에 출연했고, 특히 자넷 잭슨(Janet Jackson)과 함께 출연한 영화 <Poetic Justice>(1993)를 통해 무비스타로서도 유명세를 탔다.
1993년 발표한 소포모어 음반 <Strictly 4 My N.I.G.G.A.Z.>은 R&B/힙합차트 4위까지 랭크됐고, 'I get around'(11위), 'Keep ya head up'(12위) 같은 빅히트 싱글을 배출했다. 하지만 갱스터 래퍼 투팍에게는 성공과 함께 차츰 시련이 닥쳐왔다. 성희롱 죄를 비롯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그는 감옥을 몇 차례 들락날락 거리는 위기를 맡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최악의 상황 속에서 그는 더욱 빛을 발했다. 웨스트 코스트 랩 계열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1995년도 4집 음반 <Me Against The World>가 그것이다. 음반이 출시되었을 때 그는 감옥신세를 지고있었지만, 앨범은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앨범차트 정상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결국 멀티 플래티넘을 기록한 앨범의 히트와 동명 타이틀곡을 비롯한 'Dear mama'(9위), 'So many tears'(44위) ,'Temptations'(68위) 같은 싱글을 연이어 배출한 투팍은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며 글로벌 스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굳혔다.
인기절정의 시기에 감옥수감 중이던 투팍은 <데스 로(Death Row)> 레이블의 사장이던 서지 나이트(Suge Knight)가 보석금을 주고 자신을 풀어주는 대가로 <데스 로>와 계약을 체결하고 새로운 앨범 작업을 하게된다. 8개월 간의 감옥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둥지에서 작품 구상에 들어갔던 그는 <데스 로>를 통해서 힙합 역사상 최초의 더블 앨범인 <All Eyez On Me>(1996)를 발매했다. 데뷔 첫 주 빌보드 앨범차트 정상을 차지한 음반은 그 해 미국 내에서만 6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상업적 대성공과 더불어 갱스터 랩 계열 최고의 앨범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음반은 상업적으로도 불티나게 팔려나갔지만 무엇보다 음악으로 미국 흑인들에게 자성의 목소리를 높일 것을 촉구하는 투팍의 사회적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그뿐 아니라 음반을 가득 채운 수록곡이 모두 싱글로 발표되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잘 만들어진 앨범이었다. 무엇보다 닥터 드레(Dr. Dre)와 듀엣으로 열창한 'California love', R&B그룹 조데시(Jodeci)의 멤버였던 케이시 앤 조조(K-Ci & JoJo)가 피처링한 'How do you want it' 두 곡은 싱글차트 넘버원을 기록하며 투팍이 전성기를 이어가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영광을 끝으로 투팍은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같은 해 여름시즌 두 편의 영화에 출연한 그는 영화가 개봉되기 전이던 9월 라스베가스에서 열렸던 마이크 타이슨과 브루스 셀던과의 시합을 보고 난 후 서지 나이트(Suge Knight)와 동행한 차량이동 중 정체 모를 흑인 괴한이 쏜 총에 맞은 지 6일 만에 사망하는 비극을 맞이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수백만의 애도자들이 슬픔을 함께 나누었고, 연예산업 전반에 걸쳐 그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끊임없이 화제성을 남긴 채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동서(東西) 두 힙합 진영의 파워대결이 불러일으킨 비극이었다든지, <데스 로>를 떠나기로 결심했던 투팍에게 서지 나이트의 배후세력이 관여했다는 등,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수많은 의문이 언론매체를 장식하며 팬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하지만 불과 6개월 후 노토리어스 비아지(Notorious B.I.G.) 역시 유사한 상황으로 살해당해 동서 양진영을 대표하던 갱스터 랩 계는 그 후 하향 길로 접어들었다. 지난해 <LA 타임지>는 “라이벌이던 노토리어스 비아지가 이른바 측근 갱단 멤버에게 투팍의 살인을 청탁했다”라고 보도 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화젯거리만큼이나 음악 역시 투팍 사후에도 여전히 인기 정상을 달렸다. 그의 죽음이 있은 지 정확히 8주 후 마카벨리(Makaveli)라는 가명으로 발표된 사후 앨범 <Don Killuminati: The 7 Day Theory>(1996)는 곧바로 빌보드 앨범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그 후 2개월 뒤에는 그가 살아생전 녹음했던 수백 개의 미발표 곡이 남아있다는 무성한 소문이 나돌았고 곧 그것이 기정 사실화되며 다수의 유작음반이 출시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듬해 <R U Still Down? (Remember Me)>(2위), 1999년 <Still I Rise>(6위)에 이어 2년 뒤에는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기록하며 300만장을 팔아치운 더블음반 <Until the End of Time>(2001)가 연이어 발매되었다. 물론 그사이 1998년 히트곡을 모아놓은 베스트 작품 <Greatest Hits>(3위)가 출시되며 싱글 'Changes'(32위)가 주목을 끌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근작 <Better Dayz>(2002)이 발표되며 그동안 투팍이 숨겨왔던 미발표 곡들이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대중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투팍은 이제 우리와 살아 숨쉬고 있지 않지만, 그가 토해낸 음악들은 아직도 그를 기억하는 많은 팬들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런 모든 것들이 갱스터 랩과 함께 비극적 삶을 살다간 비운의 래퍼에게 바쳐진 행복한 선물이다. 지난해 그는 노토리어스 비아지, 퀸 라티파(Queen Latifah), 런 디엠시(Run D.M.C.), 그랜드 마스터 플래시(Grandmaster Flash) 등과 함께 힙합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는 영예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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